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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눈물이 많아졌다
최요한

2018년 여름, 예상했던 시기보다 빨리 그동안 잘 버텨주었던 한쪽 눈에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하필 한 통의 전화가 몹시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날이었다. 비단, 그 한 통의 전화로 눈의 상태가 악화된 건 아닐 것이다. 진행되던 과정에서 그날의 일이 겹친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피해 가고 싶었지만, 오래전부터 마음의 아픔이 크지 않도록 나름 준비했었다. 물론 그때도 알았다. 부질없는 연습이라는 것을. 그래도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틈틈이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수 있는 날을 대비했다. 마음의 상처가 꽤 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난 잠시 거실 바닥에 누웠다. 오래전 한쪽 눈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보다 상한 감정과 마음을 가족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진정시킨 후 아내에게 차분히 나의 상태를 알렸다. 크게 놀란 아내는 상태에 대해 계속 질문했지만, 처음 겪는 증상에 당황하고 혼란스러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 와중에 주위를 맴돌던 네 살 된 아이의 목소리가 입체적으로 들려왔다. 저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앞으로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하니 그간 연습한 것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주체할 수 없는 슬픈 감정이 흘러나왔다. 그때 알았다. 그동안 나를 위해 울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두려움과 절망을 감추고 덤덤히 살아가는 것을 마치 사명처럼 여겼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그날 이후 눈물이 많아졌다.

상황 수습을 꽤 잘하는 나는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사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은 밤늦은 9시, 기꺼이 도움을 줄 분이라 생각했다. 역시 형은 다급하게 달려와줬다. 참 감사한 분이다. 나는 형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고, 응급실이 있는 안과 전문 병원을 찾아갔다. 조수석에 누워 눈을 감고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익숙한 길이기에 눈을 감아도 그 풍경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한여름 밤 올림픽대로, 길게 펼쳐진 가로등은 늘 장관이다. 감상적이던 대세도 잠시, 자동차 에어컨의 적당한 온도가 나를 쾌적하게 하는 순간 다시 나의 상태가 자각됐다. 나 지금 아프구나.

기도해야 한다는, 살기 위한 욕구가 올라왔다. 간절히 기도하고 싶었다. 그런데 기도를 할 수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주님의 뜻이라고 기도하기가 어려웠다. 혹여나 원하지 않는 결과를 짊어지고 살아야 할까 봐 두려워서였다. 나는 위대한 신앙인들이 극한의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들을 볼 때마다 늘 자신이 없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치유해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는 기도를 하기 어려웠다. 이 간절함마저 거절당하면 내 안에서 솟구치는 분노를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응급실에 도착해 진료 접수를 했다. 아직도 근무하시던 분의 목소리 속에서 비치던 뉘앙스가 잊혀지지 않는다. 위기에 처한 사람을 일상처럼 대하며 사는 사람, 환자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분에게는 일상에서 만나는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그분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가 상태의 위중함을 짐작하게 했다. 진료를 받으면서도 증상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뒤로하고 병원을 힘없이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어노인팅은 성서정과를 통해 말씀 묵상을 한다. 그 무렵 묵상했던 시편 1편이 떠올랐다. 가려진 눈 사이로 보이는 강변의 나무들은 매우 진한 초록빛이었다. 견고한 뿌리로 아주 단단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딱 봐도 건강한 나무들이었다. 그런데 난 시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편 3절

이 말씀을 떠올리고 나를 바라보니 난 앙상한 가지만을 남겨두고 이대로 바스러질 운명 앞에 놓인 나무 같았다. 그분 가까이에 심겨진 나무가 아니었다. 하나님께 더는 따질 힘도 없었다. 경험상 지금 같은 상황의 경우 내가 원하는 엔딩이 아닐 때가 많았다.

그해 겨울까지 눈에 나타나는 증상의 원인을 찾아 많은 병원을 방문했고 날마다 두려움 속에서 지냈다. 중학생 시절 한쪽 눈을 여러 차례 수술하여 오랫동안 두 눈을 가리고 손으로 주변을 더듬으며 살았던 경험이 있다. 생리 활동마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던 수치스러운 그때를 생각하니 더욱 암담했다. 아니 그래도 그때는 나머지 한쪽 눈에 대한 희망이라도 있었다. 그랬다. 난 그렇게 생의 겨울,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래도 의연하게 사역했다. 연기에 능한 나는 능숙하게 일을 했다. 말 그대로의 일, 빠른 일상으로의 복귀가 무엇보다 시급해지는 환경 속에서 여전히 최선을 다해 일했다.

바람이 살을 패는 듯한 몹시도 추웠던 어느 겨울날. 강의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요청받은 내용은 시편 1편이었다. 나를 메마른 나무라 여기게 했던 그 말씀이다. 사무실에 앉아 성경 구절을 묵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난여름의 그 길을 지날 때였다. 길에 놓인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마르고 앙상한 가지만 남겨져 있고, 그중의 가장 얇은 가지에 마른 잎사귀들이 안간힘을 다해 매달려 있었다.

그날 내가 보고 있던 나무들은 죽은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살아 있는 나무였다. 마치 봄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들의 수치를 참고 견디듯 추위와 맞서 버티고 있었다. 시편 1편의 나무 비유 앞에서 나는 생명을 잃은 메마른 나무라 여겨졌었다. 그런 앙상한 나무는 주인에게 버려졌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간의 감정을 벗어버리고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에서 놓친 단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을 따라...'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사시사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었다. 그 나무는 시절에 따라 열매를 맺었다. 또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는 것은 잎사귀를 맺는 일이 무수히 반복된다는 뜻이리라. 겨울을 버티고 있는 나무처럼 건조함에 메마른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라면 온종일 윤택한 잎사귀와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경에서의 비유같이 주님 곁에 심겨진 나무라면 온종일 윤택한 잎사귀와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경에서의 비유같이 주님 곁에 심겨진 나무가 아니라는 결론을 낸 것도 그래서였다. 그저 메말라 보인다는 것을 증거로 스스로에게 비천해졌다니... 미련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금도 건조하지만 난 죽지 않았고 앙상한 가지일망정 다행히 잎사귀는 아직 다 마르지 않았다. 열매는 보이지 않지만, 아직 시절이 오지 않은 것이다. 나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지금도 그 시절을 반복하며 산다. 그리고 이 원인 모를 불치병에 전전긍긍하며 지낸다. 내게 기적이 필요하다면 눈의 상태가 더 악화하지 않는 것.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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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최요한
  • 출판홍림
  • 발매202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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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본 글은 최요한 대표의 산문집 「기다림이 길이 될 때」에 수록된 글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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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5

글. 최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