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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문제가 아니라, 존재다
전은주

많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불안하고, 연약한 순간에 더이상 숨기지 못하고 튀어나오게되는 모습이 있는 것 같아요.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모든 원망을 쏟아붓는 사람,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 문제가 생길 상황 자체를 통제해버리는 사람… 더 다양한 유형이 있겠지만, 위의 모습들은 순간순간 제 안에서 보게되는 아주 불안한 저의 단면들입니다. 사실 더 심각한 상황은, 위와 같은 태도로 상황과 사람을 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조차 보지 못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문제’ 자체를 제거하고 싶은 욕구는 언제나 강렬합니다.

사역을 지속해오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유형 중의 하나가 ‘어떻게 하면 팀원들을 잘 관리하고, 분위기를 유지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제 스스로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팀원들을, 사람들을, 가족을 살펴볼 때가 있어요. 거의 본능과도 같이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입니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오랜 시간 습득되어 온 제 반사신경이 ‘존재를 바라보기’라는 본질적 접근보다 ‘문제의 처리’로 저를 데려갑니다. 많은 경우에 삶은 어떻게 해서라도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문제를 처리’하려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기 시작하면 더 이상 ‘존재’가 잘 보이지 않아요.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을 가로막아 선 불편한 장애물이 보일 뿐, 그 뒤에 서 있는 진짜 사람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문제를 처리'하려는 생각이
저를 사로잡기 시작하면
더 이상 '존재'가 잘 보이지 않아요

그러고 보면 육아도 그렇더라고요. ‘육아’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task)로 보면 일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아이가 그렇게 원망스럽고, 이 일을 대신해 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제발 하루가 끝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게 되죠. 하지만, 아이를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존재로 바르게 바라볼 때, 아이의 살내음, 엄마를 찾는 목소리, 꺄르르 터지는 웃음소리, 말도 안되는 창의적인 장난에 숨겨진 상상력을 즐거워해 줄 수 있죠. (물론, 금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현실 엄마로 돌아오지만요.)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삶에도 사역에도 해결해야하는 문제들이 가득 늘어났습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못하고, 사역이나 팀원들과 만나려던 모임도 수시로 불시에 취소되고, 덕분에 삶의 구석구석에 급하게 결정해야할 일들 투성이에요. 한치 앞을 모르는 이 일들은 우리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이 불안요소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의 방향이 존재를 보지 못하게 하곤 하죠. 코로나 상황에선 더 그렇죠. 확진자, 접촉자 등등의 이름 뒤에 있는 진짜 사람이 보이지 않는 순간, 그들은 해결하고, 치워야(?)하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리니까요. (결코, 방역이나 이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의 노고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우리가 어떻게 하면 문제와 존재를 구분하여 대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입니다.)

문제 너머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기. 문제를 피하기보다 존재를 끌어안기.

이 글을 쓰고 있는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정말 너무 어렵고 잘 되지 않아서요. 사실 유지도, 해결도, 통제도 사랑해서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랑이 사라진 유지, 해결, 통제만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장 1-4절


합당한 일, 겸손함과 온유함, 오래참음이 우리의 지향점이 된 것은 참 옳은 일인데, 사랑이 사라졌다면, 사랑 안에서 행하지 않고 있다면… 사랑이 없이는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는 고린도서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사랑하는 척이 아닌, 사랑할 수 있길 그리스도인인 척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랑 안에서 그 사랑으로 살길, 다시 한 번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하나되게 하신 그 자리로, 문제를 넘어 존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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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8

글. 전은주
사진.전은주, 오병환(@saramsaz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