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노인팅 | ANOINTING
아티클
Story

주께 돌아가는 길,
박기범

세상은 또 달라져 가는데
내 삶은 더 밀려나기만 하네
이 땅 위에 내 자리는 어딜까
어디에 있을까. 주께 돌아가는 길(박기범 사 / 최요한 곡) 중

1. 일찍 잠이 깬 아침,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을 들고 sns를 열었다. 여러 사람들이 올려놓은 사진들에는 온갖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음식, 열정적인 삶의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다들 참 멋지게 살고 있구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삶이 참 평온하구나. 그런데. 그런데 나만 별로인가 봐.

2. ‘상대적 박탈감’이 이런 느낌일까. 그런데 그 단어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것 같다. 상대적 박탈감은 뭔가 내 것을 빼앗기는 피해자가 된다는 표현인데. 그때 나의 마음은 좀 더 남의 것을 빼앗고 싶은 악독한 탐욕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어쩔 수가 없다 말하지만
난 항상 내가 원하는 걸 택하네
말라버린 내 삶은
언제부터 멀어져온 걸까. 주께 돌아가는 길(박기범 사/ 최요한 곡) 중

3. 믿음이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절대 신앙은 늘 내 것이 아닌듯싶었다. 교회에서는, 설교에서는, 찬송 가운데는 목숨 바쳐 주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고백이 많았지만 내 삶의 대부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회색 지대’같기만 했다. 정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순종의 길이 어느 쪽인지 알고 있지만 선뜻 그 길을 가지 않고 있는 내 모습. 무언가 그럴듯한 논리적인 변명을 생각해 내지만. 사실 난 알고 있다. 그건 바로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려는 이기심 때문이란 것을.

4.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내 존재보다도 깊은 궁극적인 사랑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 안에서의 안전함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내가 자라 온 이 ‘회색 지대’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이탈한 상태(dis-orientation)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존재적 본질의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re-orientation) 임을 믿기에. 누군가 그 회색 지대에 서성거리고 있다면 그를 향해 공감해 주며 괜찮다고,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아갈 곳을 알면서 자꾸 맴돌기만 해
또 하루 지나면 아주 늦어버리진 않을까

커져가는 수치와
이유 모를 막막한 두려움에
주께 돌아가는 길
발걸음이 무거워지네. 주께 돌아가는 길(박기범 사/ 최요한 곡) 중

5. 그런데 이런 노래를 불러주거나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가사를 채 완성하기도 전에 그런 마음이 들어 위축되었을 때, 캠프 선곡을 구상하던 최요한 간사님의 요청이 있었다. 사실 앞의 가사를 적어놓고는, 뭔가 답을 말해야 할 것 같은 부담에 ‘주님께 돌아갑니다. 다시 주님을 예배합니다.’같은 식의 가사를 후렴에 적어놓았다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요한 간사님은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 그대로의 가사로 완성해달라고 요청했기에. 기쁘게(?) 후렴 가사를 써 내려갈 수 있었다.

6. ‘커져가는 수치와 이유 모를 막막한 두려움에..’ 이 부분 가사를 공감할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에서 스스로 내가 느꼈던 감정을 아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마치 길을 잃은 어린아이가 느끼는 것처럼 죄책감과 수치감, 두려움이 공존하는 감정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다(오래전 일이지만 실제로 길을 가다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익숙한 이 느낌은 아마도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이 느꼈던 바로 그런 감정이 아닐까 싶다.

저기 멀리
나만을 기다리는 아버지 마음에
주께 돌아가는 길
나를 받아주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주소서
구원을 베푸사 날 받아주소서. 주께 돌아가는 길(박기범 사/ 최요한 곡) 중

7. 하드코어 넘치는 우리 삶의 치열한 현실 속에서 ‘주께 돌아가는 길’ 어귀에 선채로 주저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괜찮다고, 하나님의 사랑은 열린 문과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 현실의 분주 함에 치달려 하나님 뜻과는 다른 자기만을 위한 삶을 추구하다 내면이 말라버린 느낌이 든다 해도, 우리를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마르지 않는다고 말이다. 우리를 잘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니까. 다시 걸어가 보자고 말이다.

8. 하나님, 우리에게 주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셔서 수치와 두려움을 일으키는 속임의 말들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영원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주님께 도움의 손길을 구할 용기를 부어주세요. 마르지 않는 주의 사랑을 언제나 신뢰하도록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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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4

글. 박기범
편집. 강은별
사진. 오병환(@saramsazin)